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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간 보드 및 나르는 와이어

Aug 11, 2023Aug 11, 2023

이탈리아 피렌체의 카라바조가 1603년에 그린 그림은 창세기 22절에 기초하여 임박한 이삭의 희생을 묘사합니다.

존 섬왈트

어린이 희생은 고대 세계에서 일반적인 관행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종종 선사 시대 주택과 일부 역사적인 주택의 출입구 아래에서 어린 아이들의 뼈를 발견했습니다. 때때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큰 아이를 희생하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800년 선지자 엘리사 시대에 모압 왕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큰 전투에서 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승리할 희망이 없음을 알고 “자신을 이어갈 큰아들을 데려다가 성벽 위에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너무 놀라서 진을 치고 자기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 열왕기하 3:27

1980년대 후반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이란 정부는 13세 정도의 십대 소년 수십만 명을 징집했습니다. 거의 훈련도 받지 않은 채 그들은 이라크 기관총, 박격포, 로켓, 독가스에 대항하여 인간의 파도에 파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사랑하는 독자 하나를 데리고 희생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창세기 22장

무엇을 위해 당신의 아이를 희생하겠습니까?

제2차 세계대전, 한국, 베트남 또는 기타 지역에서 싸운 아버지 여러분 중 일부는 전쟁의 공포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순간 아브라함의 고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아들딸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냈습니다. 스스로 전쟁에 나가는 것과 사랑하는 아이를 보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웠습니까? 여러분의 가족에게는 미래 세대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손자들에 대한 여러분의 희망이 거기에 있습니다. 당신의 자부심과 기쁨, 당신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돌아올까요? 당신의 가족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내 친구 Ken Anderson은 그의 큰 아들인 Curt가 1968년에 베트남으로 보내졌던 때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서 알고 있던 두려움과는 달랐습니다. 나는 총에 맞았고, 친구들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았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겁에 질려 정신이 나갔지만 이것은 훨씬 더 나빴습니다. 나는 깊고 지속적이며 끔찍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커트는 나의 큰 아들이었습니다. 나는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 그날 창밖을 내다보며 소령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내가 문을 열기도 전에 그가 왜 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Curt의 헬리콥터가 격추되어 추락하여 불에 탔으며 Curt가 실종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틀 후 그는 다시 돌아와서 커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사랑하는 독자를 데려다가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일을 하려고 나섰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왜 그는 하나님께 “대신 나를 데려가십시오. 나는 늙은이입니다. 내 아들을 살려주세요.”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베 늙은이를 너무 가혹하게 판단하지 않도록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모두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녀를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성서학 교수인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은 몇 년 전 PBS 다큐멘터리에서 빌 모이어스(Bill Moyers)가 이 이야기를 토론한 패널리스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가 말한 것이 바로 이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그토록 무서운 이유 중 하나입니다. “어느 정도 우리 모두는 우리가 부모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모라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같은 일을 하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부모는 항상 자녀를 야망, 성공, 자존심 등 무엇을 위해 희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창세기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죽이려 하였더니.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이르되 …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이 있더라.”

그 숫양은 내내 거기 있었나요? 아브라함이 그것을 보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행위가 필요하였습니까?

나는 러시아인들이 자국을 잔혹하게 침략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들딸들을 내보내는 우크라이나 부모들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합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피자 가게를 강타하여 10대 3명을 포함해 11명이 사망한 러시아의 또 다른 미사일 공격에 대한 보고가 있습니다.